이른바 '혁명 동지' 몇 사람에게만 나누어 가진 박정희 장군검. 김종필 전 총리가 별세 직전 박경석 장군에게 넘겨주었다.
김종필 전 국무총리 별세하기 반년 전 무렵, 그의 측근으로 알려진 인사가 갑자기 대전 박경석 서재를 방문하였다. 그는 나의 열렬한 팬이며, 국가관이 뚜렷한 인물로 나와는 평소 인간관계를 맺고 있었다.
그날따라 그는 긴장하면서 그가 가지고 온 기다란 포장물을 풀기 시작했다. 나는 무엇인가 궁금해하는 눈으로 포장 푸는 것을 주시했다. 그런데 뜻밖에 장검(長劒)이 나타났다.
"이 장군검은 박정희 대통령이 혁명 동지 몇 사람에게만 나누어 준 것입니다. 우선 이 장군검을 누가 준 것인지 묻지 마시고 받아 주십시오"
나는 그의 말대로 장군검의 내력을 묻지 않고 받아두었다. 자세히 장군검을 살피니 칼집 윗부분 양쪽에 대통령 문장이 정교하게 주조돼 있었고 칼집은 물소 뿔이며 칼집 이음새 장식의 두 고리는 순금이며 장식 두 개의 구슬은 순옥이였다.
그날로부터 몇 개월이 흘렀다. 술에 취한 듯한 그가 다음과 같은 말을 전했다.
"장군검의 출처를 밝히지 말라고 해 참고 있었지만 도저히 참을 수 없어 장군검의 주인을 밝히겠습니다. 그 장군검은 박정희 대통령으로부터 하사받은 김종필 총리님 것입니다. "이 장군검은 참군인인 박경석 장군이 가지고 있어야 돼" 하시며 전해 주라고 해서 박 장군님께 드린 것입니다. 그런데 궁금한 것은 많은 장군들 가운데 왜 박경석 장군님에게 준 것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김종필과 나와의 인연은 별로 좋지 않았다.
1959년, 당시 그는 육군 중령으로, 나는 육군 소령으로 HID (육군첩보부대)에 근무하고 있었다. 나는 공작 장교의 직함으로 DMZ 내에서 군사정보 수집에 몰두하고 있었다. 그러나 대북 첩보활동이 내 성정에 맞지 않아 야전군으로 전속을 요청하기 위해 HID 행정처장인 그를 만났다.
그는 뜻밖에 긴장하면서 "함께 일하자"고 하며 혼란한 시국과 부패 만연에 대한 불만을 말하면서 이상야릇한 뉘앙스가 풍기는 말을 하기에 나는 단칼에 그를 나무라며 야전군 행을 강행했다.
1965년 10월. 부산항 제1부두. 베트남 전쟁 맹호 대대장으로 출진하는 박경석 중령을 배웅하는 김종필 국무총리
그 후, 그는 5.16쿠데타에 성공, 승승장구 중앙정보부장을 거쳐 국무총리가 되었고, 나는 야전군 철원 북방 1사단 GOP 대대장으로 근무를 마치고 진해 육군대학에서 강의하다가 베트남전 대대장으로 발탁돼 맹호사단 제1진으로 출진하게 되었다.
1965년 10월, 부산항 제1부두에서 환송식이 거행됐는데 그때 김종필 총리가 내 앞으로 다가오면서 나에게 격려의 말을 했다. 그와 만난 것은 그때가 유일하다.
세월이 많이 흘렀다.
나는 전역 후 같은 충청도 사람으로 '충청 인사' 모임에 여러 번 초청 받았지만 단 한 번 참석하지 않았다. 때때로 김종필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도 좋게 이야기한 적이 없었다.
군에 있을 때나 전업작가 시절이나 변함없이 전두환의 12･12쿠데타를 포함해 두 번의 쿠데타에 강렬한 부정 의식을 가지고 있었고, 시종일관 비판의 자세를 지켰다.
마침내 나는 그로 말미암아 군복을 벗어야 하는 운명을 맞았다.
나는 지금도 어떤 명분으로서도 군인의 쿠데타는 합리화될 수 없다고 단정한다. 더구나 쿠데타의 주역 박정희와 김종필을 육사 총동창회에서 '자랑스러운 육사인상' 수상자로 선정한 것에 대해 '세기의 웃음거리'로 평가한 적이 있을 정도다.
정치적 공적과 군인의 정의는 달리 평가해야 한다는 것이 나의 군사관(軍史觀)이다. 세계 어느 문명한 나라의 군대 육사에서 쿠데타 주역을 자랑스럽다고 떠받들며 상을 준단 말인가.
그렇다고 나는 박정희 대통령의 조국 근대화 업적을 과소평가하지 않는다.
박경석 서재에 놓인 박정희 장군검
하지만 그런 비판자인 나에게 정치군인으로서는 의미 있고 귀중한 장군검을 넘기다니…. 나는 도저히 해답을 찾기 어려웠다.
더구나 그는 병석에서 죽음을 예감하고 있을 때이고, 삶을 마감하기 위한 정리 과정에 있을 그 시간에, 인생 결산의 그 숭엄한 순간에.
결국 나는 숙고 끝에 '인생 경륜의 승자(勝者)'는 김종필 총리임을 확인하면서 그의 명복을 빌었다. 그는 혁명가요, 나는 군인이었다. 그는 나의 조그마한 무공에 비해 조국 대한민국의 근대화를 위해 큰 업적을 남겼다고 인정했다.
결국 나는 김종필 전 총리의 관용정신과 전우애를 기념하기 위해 이 장군검을 박경석 가문 가보 중 하나로 보존하기로 했다.
(사진=박경석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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