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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찻잔 두 개 [AFP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중국 최대 연례 정치행사인 양회(兩會·전국인민대표대회와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기간에 쏟아져나온 주요 거시경제 정책에 대해 전 세계가 주목하는 가운데 중국 온라인에서는 일상생활과 밀접한 이슈들이 높은 관심을 받았다.
초과근무가 만연했던 중국 회사들의 변화, 정부가 직접 만든 다이어트 가이드라인, 중국의 국민 가전 브랜드인 하이얼의 유머 등이 네티즌 사이에서 화제가 됐다.
국외에서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자리에 놓인 '찻잔 두 개'와 같은 주제도 관심을 끌었으나, 이는 중국 소셜미디어와 포털사이트에서는 검열된 듯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 "초과근무 그만"…中 젊은이들 초미의 관심 보여
11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와 중국 현지 매체들에 따르면 글로벌 드론 분야 민간 부문 1위인 DJI는 자정 넘겨 일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았으나, 최근 이러한 초과근무 관행을 타파할 근무 체계를 도입했다.
SCMP는 "DJI에서는 소방 훈련하듯 오후 9시가 되면 관리자들이 직원들을 회사에서 몰아내기 시작했다"고 달라진 분위기를 전했다.
DJI의 이번 조치는 최근 리창 중국 국무원 총리가 양회의 한 축인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국회 격) 업무보고에서 불필요하게 과도한 '내권(內卷)식 경쟁'을 단속하겠다고 지난 5일 발표한 이후 나왔다.
'내권식 경쟁'이은 '제 살 깎아먹기식 경쟁'과 비슷한 뜻으로, 중국에서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주 6일을 일하는 '996 근무제' 등을 비판할 때 쓰이는 말이다.
사회적 문제로까지 떠오른 중국 기술기업(IT) 등의 초과근무 관행에 정부가 제동을 걸겠다고 나선 것이다.
이러한 가운데 중국의 대표적인 가전제품업체인 메이디(Midea)는 한발 더 나아가 '6시 20분 전 강제 퇴근' 조치를 내렸다고 밝혔다.
이러한 변화 조짐에 중국 네티즌들은 초미의 관심을 보이며 격렬한 논의를 벌였다.
이제 중국의 근무 환경도 유럽처럼 변해야 한다는 의견이 대세를 차지한 가운데 초과근무를 하더라도 취업부터 하고 싶다, 이러한 변화가 오히려 퇴보를 가져올 것이라는 주장 등이 맞섰다.
광저우 사회과학원의 펑펑 수석연구원은 SCMP에 "초과 근무 제한 조치는 과도한 노동 시간을 줄이는 효과가 있지만 경제 전망이 낙관적이지 않다는 신호가 될 수도 있다"면서 "대기업들은 이러한 변화를 따라갈 가능성이 크고, 중소기업들은 오히려 인력 감축을 선택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이 급속한 발전과 현대화를 추진하면서 기업과 정부 모두 치열한 경쟁 상태에 놓여 있게 됐다"면서 "이러한 상황은 극한의 업무 환경과 극심한 가격 경쟁을 부추기는 요인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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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오미의 레이쥔 CEO(왼쪽)과 하이얼의 저우원제 CEO. 웨이보 캡처. 연합뉴스
◇ 정부는 "다이어트하세요"…네티즌들은 "게으름뱅이용 세탁기 만들어주세요"
중국 보건기구 책임자는 취재진을 향한 공격적인 외모 지적으로 국가 정책에 대한 폭발적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위원인 국가전염병의학센터의 장원훙 주임은 '체중 관리의 3개년 계획'에 대해 질문하는 기자에게 "당신은 너무 뚱뚱해서 좀 날씬해질 필요가 있다"면서 "당신과 같은 불룩한 배(大?子)가 바로 우리의 표적"이라고 대꾸했다.
그가 발언하는 영상이 홍콩상바오의 공식 웨이보(微博·중국판 엑스) 계정 등을 통해 퍼지면서 이번 양회에서 제시된 '국가 체중감량 가이드라인'이 덩달아 주목받았다.
중국 정부는 2030년까지 중국 성인의 과체중·비만율이 70%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하면서 국민에게 체중 관리를 위한 건강한 생활 방식을 권고했다.
자칫 무례하게 여겨질 수도 있는 장 주임의 언급에 중국 네티즌들은 대체로 유쾌한 반응을 보였다.
중국의 국민 가전 브랜드인 '하이얼'의 최고경영자(CEO)는 그와는 반대 지점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양회 기간 샤오미의 CEO 레이쥔이 취재진 질문에 적극적이고 자신감 넘치게 답변하는 동안 하이얼의 저우원제 CEO는 어쩐지 자리에 어울리지 못하고 있는 듯한 표정으로 서 있어 네티즌들은 그가 '내향인'일 것이라고 추정했다.
특히 레이 CEO의 미남형 얼굴과 대비된 그의 다소 뚱한 표정이 인기를 끌자 하이얼의 공식 소셜미디어 계정도 "레이도 매우 잘생겼지만, 저우는 더 특별하게 잘생겼다'는 글을 올리며 화제 몰이를 이어갔다.
저우 CEO가 인기를 끈 것은 이 사진 한 장 때문만은 아니었다.
며칠 뒤 한 네티즌이 의류·속옷·신발·양말을 동시에 따로 세탁할 수 있는 "게으름뱅이용 세탁기"를 제안하자 저우 CEO는 엔지니어들에게 즉시 개발을 지시하겠다고 밝혀 또 큰 호응을 얻었다.
네티즌들은 "저우 CEO가 인터넷 스타로 화려한 데뷔에 성공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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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네티즌의 '게으른 사람을 위한 세탁기' 제안. 웨이보 캡처
◇ 온라인 검열은 여전한 듯…시진핑 관련 이야기는 쏙 빠져
매년 3월 초 약 일주일간 열리는 양회의 뒷이야기들이 이처럼 온라인에서 화제가 된 가운데 시 주석 등 권력자의 일거수일투족과 관련된 정보는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벌써 몇 해째 국외에서는 관심을 받는 '시진핑의 두 개의 찻잔'과 관련된 내용은 웨이보나 중국 최대 포털사이트인 바이두에서는 검열이 된 듯 아예 없었다.
지난 10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정협 폐막식 사진을 보면 시 주석 앞에만 찻잔이 두 잔 놓여 있다. 리창 총리와 왕후닝 정협 주석 등 나머지 인사들의 찻잔은 하나였다.
'두 개의 찻잔'은 시 주석의 3연임이 가시화되던 2021년 처음 등장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그때부터 해석이 분분했다.
다른 이들과는 다른 더 큰 권력을 상징한다는 해석부터 한 잔에는 차, 나머지 한 잔에는 건강상 필요한 약물 등이 담겨 있을 것이라는 추측까지 나왔다.
당시 일본 언론은 '차 한 잔을 마셔도 다음 잔이 있다'라는 의미라며 다소 확대해석하는 듯한 기사를 내보내기도 했다.
반중 성향이 짙은 일부 해외 매체들은 시 주석은 권력을 과시할 필요가 없다면서 두 잔은 독살을 막기 위한 것일 수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중국 당국은 이를 둘러싸고 각종 설이 분분한 데도 이에 대해서는 공식적으로 언급한 적이 없다.